칼럼

날씨가 궁금하다면?

정보광장


홈 >

큰바위 얼굴 김대중

기사입력 2009-09-04 18:29:59
확대 축소
“마지막으로 여기 앉아계신 피고인들에게 부탁드립니다. 내가 죽더라도 다시는 이런 정치보복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나는 기독교 신자로서 민족회복을 통한 사회구원, 민족구원을 생각했습니다. 재판부, 국선 사선변호인, 교도소 관계자. 내외신 기자여러분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검찰부에서 한 노고, 그 자체에는 감사드립니다.”

1980년 가을, 광주민주화항쟁을 배후주도했다는 억지혐의로 군사법정에서 사형구형을 받은 김대중의 이 최후진술은 장엄한 서사시오, 감동 그 자체였다. 죽음 앞에서도 의연하고 진지한 자세로 용서와 화해의 메시지를 던지는 그 숙연한 모습. 법정에 같이 있던 사람들의 가슴에도 큰 떨림이 있었다. 최후진술이 끝나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한목소리로 애국가가 터져나왔다.

그는 60여년 정치일생 내내 차마 입에 담기 힘들 정도의 숱한 비난, 폄하, 모략, 음해에 시달렸다. 그러나 그의 사후 진실은 뚜렷이 드러나고 있다. 그 어느 것도 사실이거나 근거가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김대중은 일찍부터 애국애족과 경세제민의 뜻을 실천하겠다는 꿈을 갖고 이를 실천하려 한 정치인이자 대경륜가요 사상가였다. ‘행동하는 양심’을 모토로 내걸고 평생 언행일치의 삶을 추구한 완벽주의자였지만, 언제나 비폭력을 강조한 평화주의자였다. 숱한 박해를 받고도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그 흔한 동해(同害)보복, 이른바 ‘타리오의 법칙’을 일관되게 배격한 품격의 정치인이었다.  김대중의 삶에서 드러난 그의 특징은 몇 가지로 대별될 수 있다.

첫째, 그는 평생 꿈을 갖고 있었으며, 불굴의 의지로 꿈을 이루고 삶을 개척해나간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둘째, 불리한 조건이 너무 많은 최악의 환경을 탓하지 않고 이를 이겨낸 환경극복의 상징이었다.

셋째, 평생 공부와 자기연찬을 게을리하지 않은 학습하는 사람이었으며, 이를 기반으로 조국사랑의 경륜과 비전을 만드는 미래설계의 사람이었다.

넷째, 삶과 역사와 진실에 관해 매우 긍정정인 사람이었다.

다섯째, 인간과 자연을 사랑하고 특히 여성의 능력과 인품을 높이 사는 페미니스트의 면모를 가지고 있었다.

꿈을 향한 그의 무서운 집념과 노력, 불굴의 의지와 돌파력은 국회의원과 대통령 선거에서 각각 세 번씩 떨어지고도 네 번째 도전에서 승리한 데서 잘 드러난다. 그는 2,3,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모두 낙선의 고배를 마셨지만 1961년 5대 국회 보궐선거 때 강원도  인제에서 첫 당선되며, 이후 6,7,8대와 13,14대 등 모두 6선의원이 된다. 대통령선거만 해도 71년 첫 도전에서 실패한 뒤, 1987년과 1992년의 13, 14대 선거에서 연패했으나 1997년 제15대 대선에서 결국 승리한다. ‘유지자 사경성’(有志者 事竟成, 뜻있는 자 결국 뜻을 이룬다)의 가장 대표적인 모델이라 할 만하다.

그는 1971년 첫 대선에서 내걸었던 공약을 갈고 다듬어 정치일생 내내 이를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대통령이 된 후 민주주의 발전과 서민경제 및 취약계층을 돌보는 데 최선을 다하면서도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남북정상회담 등 남북화해와 평화통일 기반조성에 전력을 기울였다. 처음 세운 꿈, 국민에게 약속한 것을 을 이루려는 그의 의지와 평생 초지일관의 자세가 잘 드러난다.  

전남 신안 하의도 작은 섬에서 태어난 김대중은 서자 출신이다. 초등학교 3학년 나이까지는 학교 문턱에도 기보지 못했다. 아버지를 따라 동생이 다니던 학교에 가본 길에 공부재질이 발견되어 학교를 다니게 됐다. 그 계기가 없었다면 나중에 당신이 술회한 대로 ‘말깨나 하는 똑똑한 농민이나. 잘 풀렸어도 면서기 혹은 군의원 정도’ 되었을 지도 모른다.
잘 알다시피 그는 그 흔한 대학에도 가보지 못했다. 목포상고 졸업이 학력의 끝이다. 유난한 학벌사회 대한민국, 일류대는 물론 대학학생회장 출신들이 즐비한 우리 정치권에서 그가 얼마나 불리한 여건이었을지를 짐작해보라. 더욱이 그는 국회의원 선거 세 번 낙선 직후 첫 부인과 사별하는 아픔을 겪었다. 그가 호남출신이라는 것도 재정 품평 등 여러 측면에서 불리했으면 불리했지 유리한 조건은 아니었다. 이만 하면 우리 정치사에서 온갖 불리한 환경은 다 갖춘 정치인이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럼에도 그는 물살을 거슬러 역영(逆泳)하고 또 역영해 목적지를 향하는 연어처럼 불리한 여건들을 다 이겨내고 마침내 승리했다.

그는 역대 국회 도서관에서 가장 책을 많이 빌려간 정치인이었다. 고졸학력의 그가 평생의 절차탁마로 정치 경제 사회 국제 문화를 넘나드는 40여권의 저서를 남긴 것은 공부와 자기연찬을 평생화두로 삼은 선비의 삶을 잘 보여준다. 그도 20대 한때는 판소리에 고수(鼓手, 북치는 사람)도 하는 등 좀 놀줄 알았다고 한다. 그러나 정치에 입문해 엄혹한 조국의 현실에 눈을 부릅뜨게 되고, 특히 39세때 이희호여사를 만나 재혼한 뒤로는 노는 것과는 완전히 거리를 두었다. 정치와 종교활동 외에는 죽자살자 공부에 매달려 왔다고 할 수 있다. 그의 박학다식과 경륜 및 세계사의 흐름을 읽는 혜안과 비전은 이런 공부의 결과였다. 심지어 영어공부조차 감옥에서 50대의 나이에 본격적으로 했을 정도였다.
별세하기 직전까지 올해 그가 쓴 일기의 일부를 엮어 펴낸 유고집 제목은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이다. ‘살아온 길에 미흡한 점은 있으나 후회는 없다’, ‘인생은 얼마만큼 오래 살았느냐가 문제가 아니다. 얼마만큼 의미있고 가치있게 살았느냐가 문제다’, ‘ 납치, 사형언도, 투옥, 감시, 도청의 박해 속에서도 역사와 국민을 믿고 살아왔다’, ‘불행도 행복도 세자면 한이 없다. 인생은 불행과 행복의 응전과 도전관계다. 어느 쪽을 택하느냐가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한다’. 일기를 관통해서 발견되는 그의 가장 큰 덕목은 삶과 진리, 사람과 역사에 관한 긍정적인 태도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꽃과 동물, 그리고 특히 여성을 아꼈다. 죽음 앞두고도 집마당의 영산홍과 철쭉꽃을 찬탄했다. TV프로그램중 ‘동물의 왕국’을 즐기며, 거기서 사람이나 동물을 관통하는 삶의 철리(哲理)를 발견하곤 했다.

그의 삶에서 차용애여사와 이희호여사는 영원한 동반자요 일생의 빚이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잇딸아 세 번 떨어진 뒤 그는 첫 부인 차여사와 사별했다. 일본대학 유학파로 목포 유수의 집안에 빼어난 미녀였던 차여사는 십수년 김대중의 선거를 뒷바라지하다 세상을 떠난 셈이다. 이 때문에 김대중은 평생 연민과 죄책감을 갖고 있었다. 97년 대선 TV토론때 이에 관한 질문이 나오자 그는 가슴아픈 사연을 소개한 뒤 눈물을 흘려 시청자들을 울렸다.

1962년 만39세의 적잖은 나이에 아들 둘 딸린 홀아비에 5.16 군사혁명 이후 정치정화법에 묶인 낭인신세이던 김대중은 우여곡절의 과정을 거쳐 동갑의 이희호( 두 분은 1923년 돼지띠 동갑이지만 호적에는 김대통령이 1924년생으로 되어있음)여사와 재혼했다. 이화여전, 서울대, 미국대학 출신에 우리나라 다섯 번째 외과의사의 딸로 당시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인텔리 여성이 라야 맡을 수 있었던 YWCA(기독교 여성연합) 총무였던 처녀 이여사와, 극빈 최악환경인 홀애비 김대중의 결혼은 참으로 ‘기적적인 결합’이었다. 하나님이 정해준 혼사였다고나 할까?

김대중의 삶은 이여사와의 재혼 이후 크게 달라졌다. 한 마디로  김대중은 이회호 없이 존재할 수 없었다. 그는 마지막 일기에서 ‘아내를 사랑하고 존경한다. 아내 없이는 지금의 내가 있기 어려웠지만, 현재도 살기 힘들것 같다’고 고백했다. 아내 또한 남편의 관속에 넣은 마지막 편지에서 ‘너무 쓰리고 아픈 고난의 생을 잘도 참고 견딘 당신을 참으로 사랑하고 존경했습니다’라고 적었다. 뭐라고 덧붙일 게 없는 감동의 로망이요,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러브스토리의 주인공들이다.

우리는 한 거인을 잃었다. 모든 사람의 삶에 큰 빛이 되고 영감을 주는 ‘큰바위 얼굴’을 떠나보냈다. 그도 사람인데 어찌 결점이나 인간적인 약점, 그리고 실패가 없을 터인가. 그러나 태풍과 해일에 맞서 사투를 벌이는 ‘노인과 바다’의 주인공을 연상케 하는 그의 드라마틱한 삶은 이런 약점과 결점, 좌절과 실패까지를 사랑하게 만든다. 한 거인을 떠나보내며 우리가 각자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옷깃을 여기며 새로운 다짐을 해볼 수 있다면 그것은 김대중이라는 한 시대의 표상이 우리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일 것이다. 그가 우리에게 던지는 소중한 잠언같은 다정한 목소리를 떠올리며.

“인생이 소중한 이유는 그것이 단 한번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누구나 잘 살아야 합니다. 수많은 고난을 겪었지만 기회가 된다면 기꺼이 이 삶을 다시 한번 되풀이해보고 싶습니다. 생을 의미있게 만드는 것은 오로지 내 자신에게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김기만(전 청와대 춘추관장 김대중 전대통령 국장 장의위원)

목록 맨위로 이전글 다음글

덧글쓰기

총 덧글수 : 1

213
이승현
wop97
제목을 보고 큰바위 얼굴이란 책이 떠올랐는데 역시 우리의 대통령은 영웅인가 봄니다.
공감 : 0  |  2009-09-12 22:58:51삭제


학생신문 Section


홈으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