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제5대 왕(재위 1450∼1452) 세종의 맏아들이자 소헌왕후 소생 중 둘째로 태어나 8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왕세자로 책봉되었다.
젊은 나이에 일찍 혼인하였으나 첫 번째 부인이었던 휘빈 김씨는 문종의 사랑을 얻으려 온갖 잡술을 이용하다가 발각되어 폐위되었고 두 번째 아내였던 순빈 봉씨는 폭력적이고 세자로부터 사랑받지 못한 외로움을 소쌍이라는 무수리와 애정행각으로 풀다가 적발되어 폐위되었다.
세 번째로 오른 권씨는 1441년 아들 홍위를 낳았는데, 이 아기가 훗날 제6대왕으로 등극하는 단종이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세자 홍위을 낳은 직후 권씨는 죽고 만다. 문종은 세 번째 부인마저 잃게 된 후로는 더 이상 세자빈을 맞아들이는 것을 포기하고, 결국 왕비가 없는 상태로 왕위에 오른다.
세종은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세자 향은 그 기대에 부응하듯 성군이 될 자질이 충분했었다. 어려서부터 인품이 관대하고 후하여 누구에게나 좋은 소리를 들었으며 학문을 무척 좋아했을 뿐만 아니라 세계 최초의 정량적 강우량 측우기를 발명할 정도로 천문과 산술에 뛰어난 능력을 보였다.
1421년부터 1450년까지 무려 29년이라는 오랜 세월을 왕세자로 지내는 동안 문신과 무신을 골고루 등용하였으며, 언관의 언론에 대해 관대한 정치를 폄으로서 언론을 활성화해 민심을 파악하는 데 힘쓰는 등 아버지 세종을 곁에서 잘 보필하였다.
1442년 세종이 병상에 누워 국정을 다스릴 수 없게 되자 세종을 대신하여 8년 동안 국사를 처리하다가 1450년 세종이 승하하자 그 뒤를 이어 조선의 임금이 되었다.
문종은 즉위와 함께 아버지 세종대에 만들어진 여러 가지 문물과 제도의 안정을 위해 노력했다.
또한 세자 시절부터 관심이 있었던 병법연구를 바탕으로 군사제도를 정비하였는데, 이는 조선시대 내내 변형을 거듭하면서 지속된 군사제도의 기본이 되었다.
또한 <동국별감>, <고려사>, <고려사절요> 등을 편찬하여 역사와 병법을 정리함으로써 사회기반을 정착시키고 제도를 확립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병약했던 문종은 왕세자 시절의 과중한 업무 공부로 인해 건강이 급속히 나빠진데다가 임금으로 즉위한 후에는 건강이 더욱 악화되는 바람에 재위 기간 내내 병상에서 지내야만 했다. 그러다가 결국 39세의 나이에 숨을 거두고 말았다.
1452년 5월 문종은 이렇게 2년 3개월 만의 짧은 *치세를 마감했다. 능은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 내에 위치한 현릉이다.
*치세란? - 잘 다스려져 화평한 세상.
세상을 잘 다스림.
문제)
조선은 건국의 정당성을 내세우기 위해 고려시대를 정리한 <고려국사>를 태조 때 완성하였으나 내용이 고정치 못하다는 이유로 다시 편찬하였다.
1451년 기전체로 완성된 책은 무엇인가요?
정답: 고려사
/조성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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