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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부정할 수 없는 한국역사

기사입력 2004-08-23 01: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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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러시아 학자들은 한국역사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해왔으며 그 중에는 고구려도 포함되어 있다.

이들연구의 대부분은 러시아의 저명한 한국역사 교수인 M.N. Pak 의 삼국사기 러시아어 번역본과 러시아에서 이미 몇 차례 발간된 바 있는 중국의 1세기 연대기를 토대로 이루어진 것들이다.

이들 문헌과 고고학 자료를 기초로 고구려에 관한 수많은 연구집이 출간되었는데, R. Sh. Jarylgasynova 의 ‘고대 고구려인’ M.N Pak 교수가 쓴 ‘고대 한국역사’에 대한 에세이 등이 그 예이다.

러시아 학자들이 집필한 저서나 연구서에는 고구려의 발생과 형성과정, 사회 및 정치구조, 당시에 이루어진 한국의 문화적 업적들이 잘 나타나 있다.

무엇보다 강조된 부분은 을지문덕 장군의 전투 등 중국의 침략에 대항했던 고구려인들의 용감한 투쟁부분이었다.

고구려사를 연구했던 모든 이들이 고구려가 한국의 초기국가들 중 하나였다는 점에 동의했다.

한반도 내의 다른 거주민들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국가의 설립과 존재했음이 한국이라는 국가의 형성과 발전에 실증적인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 학자들이 자신들의 연구에 근거로 삼은 많은 자료에는 고구려가 한국의 국가였으며, 그 문화는 한국만의 특수한 국가문화의 하나라는 견고한 증거가 담겨 있다.

그런 이유로 나를 포함한 러시아 한국역사가들에게 중국의 일부학자들이 고구려의 한국적 특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고구려 문화유산의 한국적 정체성을 부인한다는 소식은 놀라운 것이었다.

고구려 유형문화인 일부 기념물이 오늘날의 중국 영토에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국 측 주장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중국영토가 지배 왕조간의 오랜 내분, 고구려를 포함한 인접 국가들에 대한 침략 전쟁으로 형성된 것이라는 점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고구려가 특히 번성했던 5세기 광개토대왕 시기에는 오늘날 중국 북동지역의 많은 부분이 고구려의 일부였으며 그래서 광개토대왕비가 오늘날까지도 그곳에 남아있게 된 것이다.

수세기에 걸친 중국의 침략전쟁을 막아내던 고구려는 내분이 겹치면서 결국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고 7세기 후반 당나라에 패하면서 영토 일부가 중국에 넘어간 것이다.

고구려 역사는 실제로 보다 많은 그리고 심도있는 연구가 필요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균형있고 객관적인 자세를 유지하면서 올바른 역사적 사실과 상호관계 및 영향의 다양성 전체를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역사학자는 바람직하지 못한 국수주의적 자세를 지양하고 순수한 연구와 관계가 없는 정치적 목적에서 자신을 분리시켜야 한다.
 
그렇지 못한 비학구적인 태도가 오늘날 고구려를 한국역사의 빛나고 중요한 시기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에게서 나타나고 있는 점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특 별 기 고〉
고구려, 부정할 수 없는 한국역사
Yuri V. Vanin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역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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