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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신동넘어 '세계'를 넘본다

최연소 판소리 '흥부가'완창한 유태평양 군

기사입력 2009-09-07 14: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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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8년 10월 10일 한국 판소리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 일어났다.
6세의 최연소 어린이가 3시간의 흥부가를 완창함으로써 국내는
물론 전세계를 놀라게 한 일이다.

일본 NHK 선정 아시아 천재음악 신동으로도 유명한 유태평양(18세)군은
그 동안 우리의 전통음악인 국악이 노인들의 전유물로 인식되어 왔으나
유태평양 군의 출현으로 유아의 어린이도 관심 속 에서 자라나면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부여하여 신세대 어린이들에게 국악 대중화의 센세이션을 일으켜
전통예술을 세계화 하고자 하는 우리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

어린이면서도 국내와 세계각지를 다니면서 우리의 전통문화를 알리는 민간외교
사절로 공로를 인정하여 한국 신문 방송인 클럽에서 발행되는 헤드라인
뉴스지 “98년 올해를 빛낸 5대 인물”에 정치 김대중 대통령, 경제에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문화예술분야에 유태평양 군이 선정되어 큰 영광을 안기도 했다.

 또한 지난 1999년 2월 S.F의 헙스트 극장과 L.A의 파사디나시빅오디토리옴 공연
대성공과 10월 23일 아카데미상 시상식과 그레미 상 시상식이 열리는 6700석
규모인 미 최정상급 슈라인 오디토리옴 공연장에서 열린 밀레니엄 맞이
유태평양 초청 “Pacific 2000"공연의 성공은 한국인 최초의 단독무대 공연의
의의가 있으며 CBS, NBC, ABC, CNN등 미 주류 방송사들의 이목을 집중 시켰다.

98년 올해를 빛낸 5대 인물에 이어 99년에는 7000명이 참가한 인터넷 여론조사에서
“새천년 21C주역” 1위로 선정(일간스포츠 12월 30일자)되어 이는 새 시대를 맞아
태평양 군에게 국민적 많은 관심이 집중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음이 증명되는 셈이다.
 
특히 2000년 3월 일본 오사카에서의 “환생”공연은 일본 교포 사회의 민단과
조총련이 하나가 되는 계기를 마련하여 조국의 통일을 염원하는 감동적인
무대를 연출하여 현지 언론에 회자 되었다.


또한 2000년 12월에 있었던 국립중앙극장이 특별 기획한 어린이 창극“은혜 갚은 제비”
에서 주인공역은 우리나라 창극 100년 사에 처음 시도된 하나의 획을 그었다는
찬사를 받았다.

2001년 미국·중국·러시아·일본 등의 공연을 통해 우리의 전통문화를 세계에 알리는데
톡톡한 기여를 하였으며 2002년 서울 정동극장에서의 20일간의 “소리의 바다”
장기 공연 월드컵 축하공연 2004년 국립중앙극장에서의수궁가완창을 통해
태평양 군의 예술성은 전문가로부터 확실한 검증과 격찬을 받기도 했다.


 글로벌 시대를 맞아 지난 2004년 3월 South Africa에 타악 공부를 학습하기 위해
4년간의 일정으로 유학 길에 올라 CAPE TOWN의 ROADEBOSH BOYS'
PREPARATORY 를 졸업하고, ROADEBOSH BOYS‘ HIGH SCHOOL
1학년에 재학 중이다.
 
세계소리축제 홍보대사와 안면도 세계 꽃 박람회 홍보사절, 한국복지재단 홍보대사
그리고 대한민국 관광홍보대사, 충청남도 문화관광 홍보대사로
임명된 가운데  Pacific  21C 세계화 플랜”을 기획 중이다.


            다음은 유태평양과 일문일답


태평양이라는 이름을 누가 지어 주었나요?

 예 저희 아빠가 지어 주셨어요 제가 태어난 날이 우연케도 1992년 8월 15일 입니다.
태평양전쟁이 끝나는 날이었지요. 저희 아빠는 역사적인 의미에서 그리고
태평양바다처럼 크게 되라는 의미에서 저의 이름을 지어 주셨다고 해요.


혹시 친구들이 이름 부르며 놀리지 않았나요?
 
초등 학교 때에는 많은 놀림을 받았어요. 그러나 중학교 때에는 외국에서 유학생활을
했기 때문에 친구들의 놀림을 받지 않았습니다.
한국에 와서 고등학교에 입학 하고 나서 부터는 “태” 나 “양” 애칭으로
부르며 조금도 놀리지 않습니다.

태평양 군은 아주 어렸을 때 판소리 흥보가 완창을 하여 세상을 놀라게 하였는데 그때 기분과 그 시절이 기억 나나요?

 글쎄요 기억은 잘 나지 않습니다만 조금은 나는 것 같아요.
가사를 잃어버려서 우물쭈물 했던 기억은 생생 합니다.
그때의 심정이나 기분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많은 사람들이 관심 주셨던
것은 기억이 많이 납니다. 그때 나이가 6살 유치원생이었거든요

태평양군은 6살 나이로 명성을 얻고 유명한 국악인으로 성장 하고 있는데 혹시 유명세 때문에 불편한 점은 없나요?

왜요 많이 있습니다. 길거리 다닐 때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 가면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어 불편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어렸을 때는 그것을 몰랐었는데 지금은 부담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가끔 모자를 눌러쓰고 다닐 때가 있지요. 저도 친구들과 마음껏
놀고 싶을 때가 있으니까요.

태평양군은 초등학교 시절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 유학을 떠났죠.
왜 남아공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는지 말씀해 주세요.

예 저는 어려서 부터 판소리로 유명 했지만 타악기 연주를 무척 좋아 했어요
제가 8살 때 인도에 공연을 갔었는데 길거리에서 그곳 원주민 들의 공연을 보았어요
그때 공연이 어린 마음이지만 너무도 감동적이었지요 그래서 아빠한테 저도 저런
공연을 하고 싶다고 했더니 아빠 마음을 움직였나 봐요 초등학교 5학년을 마치자
마자 인도가 아닌 타악의 본 고장 아프리카로 유학을 보내 주셨어요
아빠 마음은 깊은 뜻이 있었답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유학생활을 하면서 주로 했던 공부와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저는 남아공 케이프타운에서 유학 생활을 했었는데 4년 동안 그곳의 토속 타악기인
젬비와 콩가, 둔둔, 마림바등을 학습하며 학교에서는 밴드부 활동을 하면서
드럼을 공부 했습니다.

 어려웠던 점은 너무 많지요.
 
지금도 생각하기 싫을 정도로 고생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제일 큰 고생은 언어였지요.
그 나라 주 언어는 영어 이며 공식언어만 해도 10가지의 언어가 있습니다.
물론 음식에서도 고생을 했고요 유학 4년 동안 힘든 고생을 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지금 귀국하여 고등학교 2학년에 다니고 있는데요 학교생활은 잘 적응이 되는지요?

 예 학교생활이 즐겁고 너무 좋습니다.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의 자부심과 그리고 제가 하고 싶은
판소리를 전공하며 친구들과 잘 어울리며 지내고 있습니다.

태평양군은 학교에서도 모범생으로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 총 학생회장으로
당선 되었다면서요?
 
부끄럽습니다.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마는 모범생이라 하기에는….
지난 6월 총학생회장에 당선 되었습니다. 친구들의 도움으로 당선이
되었는데 어깨가 무거워 지는 것 같아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요즘에 공연 활동은 많이 하나요..?

고등학교에 다니다 보니 학교생활이 많이 바빠서 공연 활동은 많이 하지 못하고 학교
생활에 충실 하고 있습니다. 지난 8월 14일 부터 16일 까지 서울 시립
청소년국악 관현악단과남산 국악당에서 협연을 하였고 9월과 10월에도
몇 번의 공연이 있습니다.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많은 공연을 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예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많이 있습니다 판소리를 더 공부해서 세 번째 완창을 빨리
하고 싶고요. 그리고 제가 아프리카 유학 가서 공부한 타악을 우리나라 음악과 접목해서
멋진 음악을 연주 하고 싶어요 멋진 연주가가 되기 위해서 더욱 열심히 노력 하겠습니다.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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