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문화유산탐방 - 칠곡 송림사

기사입력 2004-08-23 19:26:18
확대 축소
숲이 우거진 송림사 앞 개울가에서는 철부지들의 물장구 소리가 싱그럽다.

가마솥 같은 무더위 속에서 그나마 서늘함을 느끼게 하는 곳, 이맘때면 한 여름의 시원함도 베푸는 곳이어서 꼭 찾고 싶은 곳이다.

소나무 숲에서 생긴 절이라 해서 송림사(松林寺)라 한다는 등 각가지 흥미로운 설화가 전해지는 그 곳, 팔공산 줄기가 끝자락으로 이어지는 칠곡군 가산 남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대구시내에서도 그리 멀지않은 곳이어서 한 여름 삼복 더위를 피해 많은 피서객들이 즐겨 찾는 팔공산 계곡 중 하나로 주변경관도 만만치 않게 빼어난 곳에 모습을 드러낸다.

대웅전 앞 오층전탑(보물 제189호) 앞에서 이 사찰의 포교사는 무언가를 열심히 설명한다. 잠시 귀동냥을 해 본다.

“임진왜란 때 이곳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침입한 왜병들이 이 전탑을 허물어 버리려고 상층부에 밧줄을 걸고 당기는 순간 갑자기 천둥치는 소리에 혼비백산 달아났다”는 말에 초등학생인 듯한 한 어린이 얼굴에서 통쾌하다는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1959년 이 전탑을 해체 수리할 때 2층 옥개석에서 거북모양의 석함속에 들어있는 사리기가 발견됐다. 이 사각형의 금동 사리기 안에는 녹색 유리제 사리병을 비롯해 유리잔 수목형 금제품 옥류등이 들어있었고 상륜부의 복발 안에는 상감청자함과 그속에 향목도 발견됐다.

그외 이곳에서 찾아낸 많은 것들이 보물 325호로 지정돼 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특히 송림사의 전탑은 우리나라 5기의 전탑 가운데 하나로 여주 신륵사의 다층 전탑, 안동 조탑동의 5층 전탑, 동부동의 5층 전탑, 신세동의 7층 전탑 등과 함께 귀중한 자료로 보존되고 있다.

송림사의 5층 전탑 앞에서는 많은 질문들이 쏟아져 나와 흥미를 더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 보물들을 현장에서 보지 못하게 된 것을 아쉬워 할 틈도 없었다.
 
이어지는 어느 초등학교 인솔교사의 탑에 대한 설명에 귀를 기울여야 했으니까 말이다.
 
우리나라에 산재한 탑은 목탑, 석탑, 전탑, 모전석탑 등으로 분류된다고 말문을 연다.

목탑은 목조건축으로 여러 층을 포갠 것이며 주로 일본에서 유행하는데 우리나라에는 법주사 팔상전, 쌍봉사 대웅전이 그것이라고 한다.

석탑은 주로 우리나라에서 유행한 것으로 전국적으로 약 1500여기가 있는 것으로 집계하고 있다.
 
전탑은 구운 벽돌로 쌓은 탑이다. 중국에서 유행했는데 우리나라에도 5기가 있다.
 
모전석탑은 돌을 벽돌 모양으로 가공해서 쌓은 탑을 말한다. 분황사의 모전석탑, 군위 삼존석굴 모전탑이 대표적이라고 한다. 이같이 지역에 따라 탑의 종류가 다른 것은 지역마다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에 따라 달라졌다고 본다.

우리나라의 경우를 재질이 좋은 돌을 쉽게 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석탑이 발달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송림사의 5층 전탑은 전체 높이가 16.13m, 기단 폭은 7.3m.로 9세기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졌다.

벽돌과 화강석으로 만들어진 이 전탑은 낮은 토축기단 주위에 여러 장의 장석을 세워 만들었으며 1층의 옥신은 비교적 높으나 2층 이상의 옥신은 상대적으로 낮아 옥개석이 다른 전탑에 비해 안정감이 있다.

고려, 조선시대에 보수가 있었다고는 하나 현존하는 다른 곳의 전탑 등을 통해 볼때 거의 원형을 보존하고 있다고 한다.

전탑에 대한 세세한 설명을 뒤로한 채 한발 먼저 명부전을 거쳐 대웅전을 찾았다.

문짝이 칸마다 다르고 그 문짝의 역할에 차이가 있어 묘미를 더 해주는 송림사의 대웅전, 그래서 탐방객들의 발길을 잡는지 모른다.

건물의 한 가운데 어간은 넓고 좌우 협칸은 좁으며 뒤칸은 아주 좁아 그 크기의 비율이 3:2:1의 모양으로 비친다.

어간에 있는 가운데 두 짝은 출입문으로 안으로 열리고 나머지 두 짝은 채광용으로 붙박이 문이다. 좌우 협간의 가운데 문짝은 안으로 열리고 양옆의 문짝은 광창으로 붙박이 문이다.

문살도 재미있다. 가운데 어간의 두짝은 빗살문, 나머지 두짝은 소슷 꽃사슬문이다. 뒷간의 문살은 장자살문으로 각각의 문살이 다채로우면서도 점잖은 품위를 갖추고 있다.
 
대웅전 현판은 숙종의 어필이며 이곳에는 3백년전 쯤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높이 3m의 향나무 불상 3좌가 있는데 국내에서는 제일 큰 불상이라고 한다.갈수록 흥미를 더해준다.

대웅전 뒷벽면에 그려진 심우도는 한순간 모두의 호흡을 정지시킬 만큼 충격적이라 할까, 사뭇 인상적이란 느낌을 준다.

이 사찰 포교사의 설명을 들어가며 꼼꼼히 메모를 하다가 여덟 번째 그림인 모든 것이 ‘o’이라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일순간 지금까지 걸어온 자신들을 돌아보게하는 듯 분위기가 무겁게 보이기도 했다. 불가의 심오한 뜻이 담겨져 있다는 생각에 발걸음이 떼어지질 않는다.

어느 사찰의 교학스님은 이렇게 말한다. 사찰탐방에서 한꺼번에 모든 것을 알려고 하지마라. 사찰문을 나설때 쯤이면 무엇을 보았는지 모를때가 많다.
 
그러니까 특징적인 것 한 두점은 마음속에 담아두라고.송림사의 전탑, 그리고 심우도는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으리란 생각이 든다.

전탑으로 더욱 유명해진 송림사, 통일신라 이전 그러니까 지은지가 1500년 세월이다. 그래선지 지금의 송림사가 있기까지 숱한 고난을 겪는다.

중국에서 진신사리를 들여와 대가람으로 모습을 드러낸 송림사는 몽골의 침입과 왜란으로 불에 타거나 거의 페허가 되기도 했지만 중창을 거듭하는등 모진 세월을 이겨내면서 오늘에 이른다.

대웅전과 명부전에 붙여 놓은 송림사 연혁을 담은 안내문은 이렇게 적고 있다.
 신라 19대 눌지왕 때 아도화상이 설단기원해 소가람을 세우고 송림사라 했다고.

신라 24대 진흥왕 5년(554년) 각덕조사가 중국유학 당시 부처 진신사리 4과를 모시고 귀국 대가람을 세우고 5층전탑을 건립 민족의 정신적 지주를 삼음… (이하 중략)이라고 했다.

현재 경내 당우로는 대웅전과 명부전, 그리고 응진전, 삼성각, 산령각, 선열당, 무설전, 적묵당, 대강당 등이 적절히 잘 배치돼 있다.

4백여년 전의 사명대사를 이곳에서 또 만난다. 임진왜란 때 풍전등화와 같았던 위기 속에서 나라를 구하기위해 경전을 잠시 접어두고 왜병과 싸워야만 했던 그 호국정신은 이곳에서도 연연이 이어져 오는 것만 같다.

팔공산 동하사에 영남의 승병 총본부를 둔 사명대사는 당시 영남 일원의 사찰마다 자원한 승병들을 조련, 왜병과 맞서 나라를 지켜냈다.

이곳 송림사에도 사명대사가 거느린 3백 의승병이 조련을 받았다. 왜병이 쳐들어왔을때 승병들은 죽기로 싸웠으나 중과부족, 사찰 사수를 포기하고 경산방면으로 밀려났다.

이때 왜병들은 사찰에 불을 지르고 5층전탑을 허물려고 했으나 갑자기 하늘에서 내려치는 천둥소리에 놀라 혼비백산 모두 달아나 위기를 면했다고 전한다.

평일의 오전 송림사 앞 개울가에서 무더위를 식히던 피서객들만 가끔씩 기웃대던 사찰 경내에 오후 들면서 조금은 북적댄다.

경내 시원한 그늘에 자리를 펴고 더위를 식히는 사람들, 햇살이 따갑지만 경내를 두루 돌아보는 탐방객들, 약수통을 들고와 물을 길어가는 사람들, 대웅전에 들어가 기도에 열중하는 신도들, 송림사의 하루는 이렇게 저물어 간다.

목록 맨위로 이전글 다음글

덧글쓰기

총 덧글수 : 0

213


학생신문 Section


홈으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