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자형으로 만들어진 쇠창살. 굴이 감옥처럼 느껴지는 건 왜일까. 사람의 발길을 묶어두기 위해 만들어진 보호창살은 그러나 2년 연속 엄습한 수마에 갈기갈기 뜯기고 짓눌려 있었다.
보트를 타고 어렵사리 다다른 굴 입구. 굴 앞은 썩은 나뭇가지로 어지러웠다.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굴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서늘하다. 냉기마저 느껴진다.
굴 관리를 책임지는 정선군청 임병성씨가 멈칫거리는 일행이 안쓰러운 듯 “한여름 더위를 식히기에는 이만한 곳이 없다”며 굴속으로 미끄러지듯 사라졌다.
굴은 딴 세상이다. 바닥은 질퍽거리는 진흙과 모래더미로 늪처럼 느껴졌다. 머리 위엔 날카로운 돌칼(·)이 몸의 움직임을 가로막는다. 5m쯤 들어갔을까.
불빛에 반사된 굴이 궁전처럼 넓어진다.
미지의 세계가 눈앞에 펼쳐지는 순간. 취재진은 한발자국도 내딛지 못했다. 동굴 주인의 발자국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모래더미에 선명히 찍힌 직경 3㎝가량의 발자국. 수달의 흔적이었다. 그 놈은 어디 있을까. 한낮의 무더위를 피해 굴 어디쯤에서 그 놈은 곤한 잠을 자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수달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수달의 모습을 보지는 못했지만 노미굴은 취재진에게 여러 가지 선물을 안겨주었다.
종유석이 자라는 모습이 선명했기 때문이다.
손톱이 자라듯 노미굴 종유석은 아름아름 수정처럼 빛나는 물방울에 의지해 세월을 삼키고 있었다.
입구에서부터 15~20m 남짓한 굴 내부는 진흙과 모래로 뒤덮여 있었다.
어른 허리높이서부터는 석회암이 흘러내린 자국이 선명했다.
굴 10m 지점에서 좌측 천장. 취재진은 섬뜩한 느낌을 받았다.
인간의 발길을 허용치 않으려는 동굴 정령의 장난인 듯 흰 수염이 불빛에 반사됐기 때문이다.
균사체일까· 아니었다. 믿기지 않았지만 수염처럼 드리워진 `흰 물체'의 실체는 얼음덩이였다.
굴 내부는 30도를 웃도는 바깥기온이 무색할 정도로 차가운 냉기를 품고 있었던 것이다.
노미굴을 빠져나와 300여m 하류지점, 샘 굴을 찾았다.
굴 입구는 수달이 드나든 흔적이 선명했다.
자기만의 통로를 만든 수달 가족의 이동통로답게 쇠창살은 반질반질 윤기가 흘렀다. 어른이 겨우 드나들 만큼 입구가 좁은 샘굴은 굴 입구에서 5m를 벗어나면 거대한 광장이 나타난다. 노미굴과 달리 굴 전체가 외부 빛으로부터 완벽히 차단되는 셈이다.
`칠흑 같다'는 표현이 절로 나올 만큼 샘굴 광장은 옆 사람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어두웠다. 전등에 비춰진 동굴 천장. 그러나 취재진이 기대했던 박쥐 무리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종을 확인할 수 없는 나비들만 띄엄띄엄 차가운 천장에 붙어있었다.
노미굴과 마찬가지로 잘려나간 종유석 옆으로 또 다른 종유석이 억겁 세월을 이어가고 있을 뿐, 샘굴에서는 나비이외에 움직이는 생물체를 발견하지 못했다.
동굴 한 켠 가파른 경사지 끝 지점에서 수정처럼 맑은 호수(·)를 발견한 것이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
그러나 10여분간 바닥까지 들여다보이는 동굴 호수를 관찰했지만 생물체의 움직임은 없었다.
취재장비의 한계였다. 동강 본류 정선읍 광하리 밑굴은 도로에서 3m 안쪽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나 취재진이 확인한 밑굴은 천연 동굴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온갖 쓰레기가 내부를 뒤덮고 있었다. 도로건설이 가져다 준 피할 수 없는 피해였던 셈이다.
신동읍 덕천리 연포마을. 강을 사이에 두고 영월 평창 정선이 경계하고 있는 지점이다.
정선읍 광하리에서 영월 삼옥리로 이어지는 동강 한복판답게 연포마을은 신비로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그 곳에서 만난 연포굴은 그러나 사람의 발길을 허용치 않았다.
연포마을 입구부터 발달한 뼝대 어디쯤에서부터 스며든 물이 굴을 완전히 관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2년 연속 몰아닥친 태풍의 영향으로 굴 입구가 허물어져 내려 동굴 내부를 관찰하기는 거의 불가능했다.
평창군 미탄면 문희마을. 마하리를 지나 동강을 거슬러 올라가다 만나는 유일한 마을이다.
현지인에 의해 발견된 백룡동굴이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다.
백룡동굴은 댐 건설 논란이 한창일 때 `동강 보호'의 최 일선에 서 있었던 상징물이다. 그 만큼 굴 내 부는 아름답게 발달한 종유석이 일품이다.
지금까지 확인된 동강유역 동굴은 모두 71개. 정선지역 34개, 평창지역 21개, 영월지역 16개 등이다.
그러나 현지 주민들은 “뼝대 상층부에 발달한 동굴까지 합치면 숫자는 엄청 늘어난다”며 “보다 정밀한 학술조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굴 내부에 서식하는 생태계 군도 다양한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2002년 환경부와 국립환경연구원이 펴낸 동강유역 생태계조사 보고서는 “동강 유역 71개 동굴에는 붉은관박쥐 등 희귀 동식물이 다양하게 서식하고 있다”며 “특히 일부 동굴은 동물의 서식처로 보호가치가 매우 높다”고 기술했다.화해의 강 동강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