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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돼지 위협 이긴 뒤 화려한 여름살이

기사입력 2004-07-12 15: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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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어느 법과대학 학생들의 형사모의재판을 본 적이 있다. 법을 전공하는 학생들의 실무 능력을 높이기 위해 진행한 수업이었는데, 두루미와 우렁이의 생존을 주제로 한 재판이었다.

두루미가 우렁이를 막 잡아 먹으려 할 때 사람이 이를 보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사건의 본질이다.  과연 두루미가 우렁이를 잡아 먹도록 내버려 둬야 하는지, 아니면 우렁이를 잡아 먹지 못하게 해 우렁이를 살려야 할 것인지를 다투는 재판이다.

우렁이를 살리자니 두루미가 굶어 죽겠고, 그대로 내버려 두자니 우렁이가 죽임을 당해야 할 운명인 것이다.

오대산 국립공원에 있는 한국자생식물원에서도 이와 흡사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요즘은 하늘나리가 하늘을 향해 진홍빛 입술을 열고 관람객들을 유혹하는데 간밤에 멧돼지가 내려와 하늘나리 뿌리들을 캐먹고 마구 짓밟아 생태식물원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렸다.

해마다 이맘때쯤 나리 뿌리를 먹으러 내려오는 멧돼지와 원추리꽃을 따먹으러 내려오는 고라니 때문에 식물원 식구들의 마음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지난해에는 군락으로 만들어진 원추리꽃을 거의 보지 못할 정도로 고라니들이 다 따먹어 많은 관람객들에게 항의를 받기도 했다.

산 속에 먹을거리가 떨어진 탓인지, 나리 구근이 맛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위험을 무릅쓰고 마을로 내려오는 야생 동물들과 그들이 먹어치운 식물을 해마다 새로 심고 가꾸어야 하는 식물원 식구들과의 관계는 껄끄럽기만 하다.

더불어 사는 자연을 가꾸자는 것이 식물원 설립의 기본 이념이긴 하지만 이렇게 되고 보니 어찌 해야 할 바를 모르겠다. 총을 들고 지킬 수도 없고, 울타리를 칠 수도 없고, 다른 먹이를 대신 놓아 둘 수도 없고, 야생동물들에게 꽃들을 빼앗기기 시작해 3년이 넘도록 고민만 하고 있다.

하늘나리는 나리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꽃으로 높은 산 햇볕이 잘 드는 양지 쪽 풀밭에서 잘 자라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꽃색이 곱고 화려해 꽃꽂이 재료로 많이 쓰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나리의 종류는 초여름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 하늘나리를 비롯해, 하늘말나리, 섬말나리, 솔나리, 날개하늘나리, 중나리, 털중나리, 참나리, 땅나리 등이 있다.

특히 솔나리는 멸종 위기 식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대부분의 나리들은 번식이 잘 되기 때문에 집에서도 기르기 쉽다.
앞으로 식용으로 개발도 기대되는 우리고유의 식물자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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