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을 힘차게 들어올린 함백산.
그 산은 온 힘을 다해 동토의 세월을 밀어낸다.
숨죽였던 모든 것들이 솜털 같은 숨을 내 뿜는 3월이다. 복수초가 노란 꽃망울을 터뜨리고, 그 고운 자태에 얼음덩이가 녹아내리는 순간, 지장천은 어느새 몸뻬(왜바지)를 벗고 여우버들 하늘거리는 삼단치마로 바꿔 입는다.
윗물을 받아 아랫물을 넓히고, 아랫물을 길어 하늘하늘 봄맞이에 한창인 동강. 그 강은 자줏빛 할미꽃으로 곱게 단장하고 또 다른 세월을 고개 숙여 반긴다.
동강의 봄은 얼음 톱이 풀리면서 시작된다.
모래톱과 자갈톱에 은빛 비늘처럼 붙어있던 얼음조각은 3월 중순이면 실타래처럼 풀어져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얼음톱이 풀리면 동강은 소란스럽다.
물고기는 새 생명을 잉태하기 위한 몸부림으로 부산하고 씨앗은 두꺼운 껍질을 벗고 여린 숨을 쉬기 시작한다.
쌀밥 보리밥 아이들의 손장단에 맞춰 제비꽃이 피어나고 담장 너머 밭 기슭엔 깨소금에 맛깔스러운 햇잎이 솟아오른다. 미역취 새싹이 돋고, 할머니 손길에 사납던 곤드레도 생명을 틔어낸다. 까치발 쑥 잎이 강 언덕에 소담스럽고 노란 꽃망울을 숨긴 양지꽃은 봄바람에 어지럽다.
동강의 4월은 신명이다. 물은 물대로 산은 산대로 신명에 겨워 생명을 틔어낸다. 모든 생명이 아우성치는 동강. 그 곳엔 어떤 식물이 살고 있을까?
정선과 평창 등 2개군에 걸쳐 있는 백운산을 중심으로 동강유역 식생은 다양한 종을 선보이고 있다. 국립환경연구원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동강 유역에는 111과 453속에 이르는 956종류의 관속식물이 자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생태적 가치가 높은 특정식물은 188종. 백부자 동강할미꽃 개병풍 솔체꽃 산토끼꽃 마키노국화 병아리풀 자주쓴풀 쑥방망이 등이 동강을 대표하는 식물로 꼽히고 있다.
국립환경연구원은 “댐 건설을 취소하게 된 가장 큰 이유가 희귀 생물종 보호였던 만큼 동강할미꽃과 백부자 마키노국화 산구절초 솔체꽃 쑥방망이 자주쓴풀 등의 자생지는 절대적으로 보호돼야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국립환경연구원은 “동강유역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 및 지역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주요 희귀종 자생지역을 생태투어 탐방지로 개발해야 한다”고 주문하기도 했다.
‘동강유역 생태계조사 보고서’의 주문은 그러나 곧바로 이어진 생태계보전지역 지정 등 후속조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주문’으로 끝나고 있다. ‘동강을 제대로 보호하자’는 주장도 2002년과 2003년 몰아닥친 수해로 결실을 맺지 못하고 있다.
원주지방환경청이 2004년 7월 발표한 ‘동강유역 생태계 보전지역 관리기본계획 수립을 위한 연구’에서도 이 같은 문제점이 지적됐다.
이 연구서는 “2002년 8월 동강유역 64.98㎢가 생태계보전지역으로 지정됐으나 이를 관리할 체계적인 시스템이 미흡하다”며 “생태계 훼손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그 보고서를 지침 삼아 2004년 8월17일 동강유역 백운산을 찾았다. 2003년 7월과 2004년 6월에 이어 3번째 등정. 백룡동굴로 유명한 평창군 미탄면 문희마을에서 신동읍 제장마을로 이어지는 등산로는 떡갈나무 숲 사이로 동강이 언뜻언뜻 비칠 정도로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고 있었다.
이 등산로를 따라 국내 유일의 향나무 자생단지가 분포하고 마키노국화 백부자 산구절초 등이 폭넓게 자생하는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기록처럼 등산로 주변엔 향나무가 드문드문 눈에 띄었다.
아름드리 소나무와 떡갈나무 숲을 비집고 등 굽은 할아버지처럼 동강을 굽어보는 향나무. 나무 결 따라 세월의 때를 듬뿍 묻힌 그 나무는 등허리에 찍힌 쇠톱 자국에도 아랑곳없이 산 절벽을 든든히 받치고 있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날 산행에선 더 이상의 ‘동강 특정 식물’을 만나지 못했다.
평창군 미탄면 마하마을에서 ‘시골밥상’이라는 민박을 운영하는 이재녀씨(58)는 “식물이고 향나무고 관심 없다”며 “관청에서 변소라도 지어줬음 좋겠다”고 했다. 여름 한철 파리 떼처럼 밀려드는 래프팅객이 고와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그녀의 남편에게 백운산 향나무 군락지에 대해 물었다. 그는 대뜸 “다 베가고 뭐 있나요. 그나마 몇 그루 있던 것도 없어졌다 카던데…”라며 말끝을 흐린다. 취재진이 드문드문 확인한 향나무가 현지인들에겐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비쳐진 듯싶었다.
마하리를 빠져나와 정선읍 광하리에서 신동읍 연포마을로 이어지는 강변 식생 상태를 살폈다. 광하리 동강할미꽃 자생지와 뼝대에 달라붙은 돌단풍, 그 돌단풍과 어우러진 회양목 군락. 동강 식생은 여전히 풍부했다. 그러나 아쉬움도 있었다. 가수리에서 운치리를 지나 덕천리로 이어지는 동강 기슭이 2년 연속 몰아닥친 태풍에 휩쓸리며 비술나무군락지가 파괴된 것이다.
그나마 남아있던 비술나무도 도로개설에 참여한 건설업자의 손에 무참히 잘려 나갔다.
한 주민은 “동강유역이 생태계보전지역으로 지정되긴 했으나 식생 보호장치는 턱없이 허술하다”며 “동강할미꽃과 돌단풍 등 일부 식물에 대한 굴취도 여전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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