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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를 키우던 농민에게서 국가 정책의 기본을 배우라!”

기사입력 2009-02-21 13: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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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릴 적 우리 집에서는 늘 돼지 한 두 마리를 키웠다.
 
지금이야 가축을 기르는 일도 대규모 사업으로 커져서 웬만한 축산농가에서는 한 집에 최소한 수십 마리 이상씩을 키우고 있지만, 예전에는 농촌 가구마다 대개 음식 찌꺼기 등을 활용해 돼지 한 두 마리씩을 키워서 자녀들을 위한 아주 중요한 학자금 원천으로 삼았었다.

돼지는 식욕도 왕성하지만 번식력도 뛰어나다.

유행성 전염병과 같은 질병에 걸려서 폐사(斃死)할 경우를 빼고는 한 번에 열 마리 정도의 새끼를 정기적으로 낳는다.

어미 돼지를 키워 파는 수익도 있지만 이 새끼들을 내다 팔면 만만치 않은 현금을 손에 넣을 수 있었으니, 어려운 농촌 살림에는 ‘새끼 잘 낳는 돼지’가 큰 ‘복덩어리’였던 셈이다.

한꺼번에 새끼를 여러 마리씩 낳는 동물들은 새끼들끼리 젖먹기 경쟁이 치열하다.
이런 종류의 동물들은 태어나서 맨 처음에 물었던 젖꼭지를 계속해서 차지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튼튼하게 태어난 새끼가 젖이 가장 많이 나오고 젖을 빨기에 좋은 위치에 있는 젖꼭지를 차지한다.

하지만 애초에 약하게 태어난 놈은 젖도 제대로 나오지 않고 자칫 잘못 하다가는 육중한 어미에게 깔려죽기 쉬운 곳을 간신히 차지해 잘 나오지도 않는 젓을 빠느라 고생만 하며 비실비실대다가 삶을 마감하기 십상이다.

그래서 돼지가 출산을 하자마자 어머님께서는 새끼들을 한쪽으로 따로 떼어놓고서, 상태를 살펴보신 뒤에 가장 약해 보이는 놈에게 제일 유리한 젖꼭지를 물려주고, 그 다음  차례대로 자리를 잡게 해주셨다.

그렇게 해야 한 배에서 태어난 돼지 새끼들을 골고루 건강하게 길러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머님께서 위와 같이 하셨던 것은 순전히 앞서 돼지를 키웠던 분들에게 전해들은 것과 당신의 경험에서 나온 지혜를 합한 행동이지만 이러한 행동의 효과는 전문가들의 연구에 의해서도 증명이 된다.

새끼 돼지는 놀랄 정도로 성숙한 이빨을 가지고 태어나는데, 특히 아래턱에서 바깥쪽으로 뻗어있는 송곳니는 거의 어른 돼지와 다름이 없다고 한다.
 
오랫동안 이 송곳니의 존재에 대해 관심이 없었는데,
캐나다의 생물학자 데이비드 프레이저(David Fraser)는 ‘새끼 돼지가 자기 젓꼭지를 뺏기지 않기 위해 송곳니를 사용한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이를 증명하기 위해 몸집이 큰 새끼 돼지의 송곳니는 잘라내고 몸집이 작은 새끼의 송곳니는 그대로 놓아 두었더니 새끼들의 사회가 훨씬 더 평등해졌고,
작은 새끼가 큰 새끼에 맞먹는 속도로 성장하였다는 것이다.
 (더글러스 W. 모크 지음, 정성묵 옮김,『살아있는 것은 모두 다 이유가 있다』312∼313쪽에서)
 
만약 돼지 새끼가 태어났을 때, 주인이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자연’그대로 방치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야말로 ‘적자생존(適者生存)’의 치열한 경쟁 끝에 처음부터 강하게 태어난 새끼는 어미젓을 마음껏 먹고 자라 튼튼한 어른 돼지가 되어 후손을 낳아 유전자를 물려주지만,

부실하게 태어난 놈은 형제들에게 치어 어미젓도 제대로 얻어먹지 못하고 비실비실 대다가 짧은 삶을 마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흔히 “자연 그대로 놓아두는 것이 최고”라면서, 이 원리를 인간 사회에 그대로 적용하려는 이들이 많다. 아마 요즈음 유행하는 ‘신자유주의자’들의 논리가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이들은 “많이 가진 사람들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며 그들이 계속해서 남들보다 더 많이 가질 수 있도록 방치·조장하면서 이것을 ‘자유’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의 자유’가 아니라, 냉혹한 ‘동물 세계의 자유’다.

몸이 약하게 태어났어도, 부모의 학식이 높지 않고 재산이 많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에게 뒤처지지 않고 그들과 똑같이 아름답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어야 인간이다.
 
인간을 제외한 동물 세계에는 오로지 ‘자유’만 의미가 있고 ‘평등’이 불필요할지 모르지만, ‘만물의 영장’을 자처하는 우리 인간 세계에는 ‘자유’와 함께 ‘평등’이 절실한 것이다.

‘평등’, 이 한 가지가 인간과 다른 동물의 경계를 나누는 지점일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 우리 사회에서는 스스로 ‘인간’이기를 거부하고 험악한 짐승들의 세계로 돌아가려고 하는 움직임이 너무 거세다.

재산을 많이 가진 사람들에게 아주 조금 더 내게 하던 세금을 내려주고, 어려운 사람들에 대한 복지 혜택을 줄이려고 한다.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은 새끼돼지가 태어났을 때 약한 놈에게 좋은 위치의 젓꼭지를 물리게 해주어 새끼들이 골고루 건강하게 자라나게 해주는 것과 같아야 한다.
 
정부가 이 역할을 포기하거나 일부러 거부할 때, 우리 사회는 야생 상태로 돌아가 피냄새를 맡게 될지도 모른다.

뿐만 아니라 만약 젓꼭지를 공평하게 잡아주는 역할로도 모자란다면, 정부와 정치권은 캐나다 생물학자의 실험에서와 같이 튼튼한 놈의 송곳니를 잘라내는 과감한 조치까지도 실행에 옮겨야 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 정부에서는 크고 건강한 새끼 돼지의 송곳니는 가만히 놓아두고 - 아니 그 송곳니를 더욱 날카롭게 해주고, 부실하게 태어난 작은 새끼의 송곳니는 뽑아 버리는 ‘이상한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돼지를 키우던 농민에게서 국가 정책의 기본을 배우라!” 이것이 새해 벽두부터 내가 느닷없이 돼지 새끼 이야기를 하는 이유이다.자유와 평등이 함께 해야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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