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내일로 희망을 나르는 사람들/ 박수정 지음

기사입력 2004-06-23 17:58:48
확대 축소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한 한 여성이 노동 운동에 투신하기 위해 구로 공단에 발을 디뎠다. 벌써 10여 년 전 이야기다. 그곳서 같은 생각을 품은 한 청년을 만났고, 구로동에 둥지를 틀었다.

구로 3동에 살면서 한 아이의 엄마가 된 그녀, 박수정씨는 이제 글쓰기를 통해 우리 이웃들의 보다 나은 삶을 찾아나섰다.

‘구로노동자 문학회’에서 활동 중인 그가 우리 시대의 소외받은 사람들을 찾아가 그들의 육성에 귀를 기울여 담아낸 이야기에 우리가 귀를 기울일 차례다.

‘내일로 희망을 나르는 사람들’은 바로 우리 이웃의 고통을 담담하게 기록한다. 구로동 재개발 지역의 방 한 칸 짜리 집에서 가난에 시달리는 아이들, 알코올 중독자 상담소를 찾는 노숙자들, 사회 단체에서 주는 한끼의 도시락으로 연명하는 독거 노인들, 차별 대우에 상처받는 조선족 동포들… 그가 만난 지금 우리 시대의 이웃은 엄연한 실제인 동시에 그림자다.

영등포 일대에서 노숙 생활 4년째인 한 사내. 류머티즘에 퇴행성 관절염을 앓고 있고, 척추도 다쳤다.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느낀다. 그는 영등포 우체국 2층을 자주 찾는다. 그곳의 컴퓨터를 무료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집에 들어가지 못한 채 떠돌이 생활을 하지만, 초등학교 5학년 딸 아이에게 이 메일로 소식을 전한다. 어느날 ‘받은 편지함’에 들어갔더니, 딸 아이의 편지가 왔다. “아빠, 죽지 마세요”라고. 그는 그날 소주 다섯병을 비웠다.

영등포에서 알코올 중독자들을 치료하는 응급 보호 시설 ‘자유의 집’. 말을 하지 못하는 한 여인이 알코올 중독자인 남편을 데리고 왔다.
 
그녀는 뜯어낸 종이 조각에 매직펜으로 남편을 치료해달라고 호소했다.

 ‘술만 먹고 밥은 안 먹어요. 내가 내일 술 못 먹게 하고 보낼테니까 어디로 좀 보내줘요.”

그녀는 10년 전 인신 매매를 당해 섬으로 끌려갔다가 혀까지 잘렸다고 한다.

구로동의 구로남초등학교 축대 밑에 바짝 웅크린 채 대낮에도 컴컴한 집에 홀로 사는 김봉옥 할머니. 올해 87세다. 매달 생활보조금으로 19만6000원을 받으며 산다.

지난해에는 몇달치 교통비까지 합쳐 35만원을 한꺼번에 받았는데, 그 돈을 다 세어보기도 전에 잃어버렸다.

할머니는 교회에 가서 기도했다.
 
“아버지 하나님, 어려운 사람이 가져갔지 더 나은 사람이 가져가진 않았을테니, 수해로 집도 절도 없는 사람한테 다만 천분지 일이라도 현금으로 나가게 해주세요.”

구로동 재개발 지역의 저소득 가정 아이들을 위한 공부방 ‘파랑새나눔터’. 한 아이에게 연극 놀이로 ‘우리 가족’을 소개하라고 했다.

“지영이는 6학년 아이 하나를 등 돌려 세우더니 엄마라며 음식을 만드는 시늉을 하게 했다. 그런데 그 엄마는 계속 잔소리를 해대며 아이들을 혼낸다.

지영이는 다른 아이를 아빠로 삼아 가운데에 세우고는 치켜든 손에 몽둥이를 쥐어줬다. 그리고 그 몽둥이 밑에 오빠 역할을 하는 아이와 함께 서서 고개 숙이고 우는 시늉을 했다. 그때 처음 지영이는 집안을 보여주었다.”

가난한 부모는 고단한 현실에 대한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아이들에게 화를 푼다. 그 아이들은 학교에서도 따돌림을 당한다. 15평 짜리 아파트에 사는 아이는 10평 짜리 아파트의 아이와 놀려고 하지 않고, 10평 짜리의 아이는 그 보다 못한 처지의 아이들을 무시하는 세상이다.
 
잘사는 집 아이들이 어른들의 배금주의와 이기주의에 물드는 동안, 못사는 집 아이들은 어른들의 허무주의와 세상에 대한 적개심을 배우게 된다. ‘파랑새나눔터’를 거쳐갔던 아이들은 커서 사회의 주변부 인생으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이 책에는 매일 혼자서 놀이터에서 노는 세살배기 아이가 나온다. 부모가 애지중지하면서 놀아줘야 할 아이가 매일 혼자 노는 것이 신기하다. 얼굴과 옷에 땟국이 줄줄 흐른다.

알고 보니 아이의 아빠는 동네의 조그만 봉제공장 재단사로 밤 10시가 넘어야 들어오고, 엄마는 조선족인데 아파서 중국에 가고 없다. 그래서 아이는 어려서부터 혼자 놀아야 한다. 누구라도 그런 아이를 지켜보면 소리없이 젖어드는 연민과 슬픔에 빠지지 않을까.

그는 말한다.
“혼자 놀고 혼자 길을 가는 꾀죄죄한 어떤 아이, 식당에서 거리에서 땀을 비오듯 쏟으며 일하는 어떤 사람, 길거리에서 눈물을 훔치고 있을 어떤 사람, 아니 그 누구라도 눈길 마주치고 옷깃 스칠 때 행여 그 사람, 고통 속에 잠겨있을 지 모르니, 잠시라도 내 것, 내 아이, 내 가족, 내 고통에서 비껴 나올 일이다. 마음이 가난한 아이들에게 희망이 있기를…”

‘내일로 희망을 나르는 사람들’은 이밖에 여성 농민 윤금순씨가 농민운동의 지도자로 살아가게 된 과정, ‘덜 추하고 더 아름다우며, 덜 차별적이고 더 민주적이며, 덜 비인간적이고, 더 인간적인 세상’을 바라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꿈, 통일이 되면 비무장 지대 부근에서 농사를 짓고 싶다는 한 탈북자의 소망, 43년을 감옥에서 보낸 한 비전향 장기수가 외치는 ‘인간의 존엄’ 등을 담고 있다.

박씨는
“내가 만난 사람들의 삶이 100퍼센트라면 내 글은 1퍼센트도 채 되지 못할 텐데, 그이들이 눈물 흘려가며 들려준 이야기 덕분에, 그리고 삶 덕분에 이 책은 세상에 있을 수 있었다”
고 말한다.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그런 게 있기나 한가하고 멀리 팽개쳐 버렸던 희망이라는 낱말을 다시 손에 쥐어야 겠다”고 썼다.

<네가 있고, 우리가 있어 아름다운 세상, 내일로 희망을 나르는 사람들>

박수정 지음/ 이학사/ 303쪽/ 9800원 

목록 맨위로 이전글 다음글

덧글쓰기

총 덧글수 : 0

213


학생신문 Section


홈으로 위로